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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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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캐나다의 정치가로, 역대 최장수 총리이며 1921년부터 194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역임했다. 그는 토론토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노동부 장관을 거쳐 자유당 당수가 되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관세 인하, 캐나다 내셔널 철도 정상화, 캐나다 자치권 확대, 노인 연금 도입,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또한 1945년 유엔 설립에 기여했으며, 캐나다 시민권법을 제정했다. 킹은 사회 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지만, 일본계 캐나다인 강제 이주 정책과 같은 논란도 있었다. 그는 캐나다 복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제 사회에서 캐나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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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42년의 킹 수상
1942년의 킹 수상
이름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원어 이름William Lyon Mackenzie King
출생일1874년 12월 17일
출생지온타리오주 벌린
사망일1950년 7월 22일
사망지퀘벡주 첼시
안장 장소온타리오주 토론토 마운트 플레전트 공동묘지
정당캐나다 자유당
서명William Lyon Mackenzie King Signature.svg
직책
총리 (1번째 임기)재임 시작: 1921년 12월 29일
재임 종료: 1926년 6월 28일
총리 (2번째 임기)재임 시작: 1926년 9월 25일
재임 종료: 1930년 8월 7일
총리 (3번째 임기)재임 시작: 1935년 10월 23일
재임 종료: 1948년 11월 15일
야당 대표1930년 8월 7일 ~ 1935년 10월 22일
1926년 6월 29일 ~ 1926년 9월 24일
1919년 8월 7일 ~ 1921년 12월 28일
자유당 대표재임 시작: 1919년 8월 7일
재임 종료: 1948년 8월 7일
장관 직책
외무부 장관재임 시작: 1935년 10월 23일
재임 종료: 1946년 9월 4일
외무부 장관재임 시작: 1926년 9월 25일
재임 종료: 1930년 8월 7일
외무부 장관재임 시작: 1921년 12월 29일
재임 종료: 1926년 6월 28일
노동부 장관재임 시작: 1909년 6월 2일
재임 종료: 1911년 10월 6일
의회
선거구글렌개리
임기 시작1945년 8월 6일
임기 종료1949년 6월 26일
선거구프린스 앨버트
임기 시작1926년 2월 15일
임기 종료1945년 6월 10일
선거구요크 노스
임기 시작1921년 12월 6일
임기 종료1925년 10월 28일
선거구프린스
임기 시작1919년 10월 20일
임기 종료1921년 12월 5일
선거구워털루 노스
임기 시작1908년 10월 26일
임기 종료1911년 9월 21일
학력
출신 학교토론토 대학교 (BA, MA, LLB)
시카고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MA, PhD)
기타 정보
국왕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총독베스버러 백작
트위즈뮤어 남작
애슬론 백작
알렉산더 자작
비미의 빙 자작
윌링던 후작
이전 총리리처드 베넷
아서 메이건
다음 총리루이 생로랑
리처드 베넷
아서 메이건

2. 생애

온타리오주 베를린(현재의 키치너)에서 스코틀랜드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토론토 대학교와 오스굿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시카고 대학교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특히 190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양인들의 캐나다 이민"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는 역대 캐나다의 총리 중 유일한 박사 학위 기록이다.[180]

1908년 국회에 처음 진출했으며, 이듬해인 1909년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초기 정치 경력을 쌓았다. 1919년 자유당의 당수로 선출되었고, 192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처음으로 총리직에 올랐다.

2. 1. 초기 생애 (1874-1900)

1899년경의 킹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1874년 12월 17일, 온타리오주 베를린(현재의 키치너)에 있는 벤턴 스트리트 43번지의 목조 주택에서 태어났다.[5][6][7][8] 그의 부모 존 킹과 이자벨 그레이스 맥켄지는 스코틀랜드계였으며 독실한 장로교 신자였다. 외할아버지는 토론토의 초대 시장이자 1837년 상캐나다 반란의 지도자였던 윌리엄 라이온 맥켄지였다. 아버지 존 킹은 변호사였으며, 나중에는 오스굿홀 로스쿨에서 강사로 일했다. 킹에게는 누나 이자벨(1873~1915), 여동생 재닛(1876~1962), 남동생 더걸(맥스, 1878~1922) 등 세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9] 가족 내에서는 '윌리'라는 애칭으로 불렸지만, 대학 시절부터는 'W. L. 맥켄지 킹'이라는 서명을 사용했고,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는 '맥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선호했다.

킹의 아버지는 작은 도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가족은 검소하지만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하려 애썼고, 1890년경 토론토로 이사한 후에는 재정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10] 킹은 토론토 대학교 재학 시절 몇 년간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그는 평생 장로교 신앙을 지켰으며, 기독교적 의무감에 기반한 사회 개혁에 헌신했다.[11]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12]

킹은 1891년 토론토 대학교에 입학하여[6] 정치, 경제, 법학 등을 공부했다.

주요 학력
연도학위학교비고
1895문학 학사 (BA)토론토 대학교[13]
1896법학 학사 (LLB)토론토 대학교 (오스굿홀 로스쿨)[13]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에서 잠시 근무.
1897문학 석사 (MA)토론토 대학교[13]
1898정치경제학 석사 (MA)하버드 대학교시카고 대학교에서도 수학.[20]



토론토 대학교 재학 중 그는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세틀먼트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1895년에는 학생 파업을 주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당시 연방 우정장관이었던 윌리엄 멀록과 관계를 맺었다. 이는 훗날 그가 공직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15] 또한 대학 신문인 ''더 버시티''에 글을 기고했으며,[16][17][18] 졸업 후에는 ''더 글로브'', ''더 메일 앤드 엠파이어'', ''토론토 뉴스'' 등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19]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사회 개혁가 제인 애덤스헐 하우스에서 활동했으며, 육상팀 선수로도 뛰었다.[20]

1900년, 킹은 캐나다 연방 정부에서 새로 창설된 노동부의 차관으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노동 문제 전문 간행물인 ''Labour Gazette''의 초대 편집자가 되었다.[22] 이는 킹의 본격적인 공직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후 1909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양인들의 캐나다 이민"("Oriental Immigration to Canada")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역대 캐나다의 총리 중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소지한 인물이다.[180][21]

2. 2. 초기 정치 경력 (1900-1919)

킹은 1908년 연방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의회에 처음으로 당선되어 워털루 노스 지역을 대표하게 되었다.[6] 1909년, 킹은 윌프리드 로리어 총리에 의해 최초의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6]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킹은 두 가지 중요한 법안의 통과를 주도했다. 바로 「산업 분쟁 조사법」과 「결합 조사법」이다. 이 법안들은 그가 이전부터 구상해왔던 것으로, 수백만 명의 캐나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25] 1910년에는 공공 사업에서 8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이는 상원에서 부결되었다.[26]

킹은 1911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배하여 의원직을 잃었고, 자유당 역시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6]

2. 3. 자유당 당수 (1919-1921)

1919년 윌프리드 로리에가 사망하자, 은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캐나다는 퀘벡의 징병 반대와 온타리오 및 프레리 지역의 농민 반란으로 인해 언어, 지역주의, 계급 갈등이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였다.[30] 기반이 약했던 킹은 로리에의 유산을 계승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며 복지 개혁을 촉구하는 한편, 보수당 경쟁자들에게 확고한 반대 입장을 내세워 다른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입지를 다졌다.[30]

킹, 1919년


같은 해 열린 첫 자유당 대표 선거에서 킹은 네 번째 투표 끝에 세 명의 경쟁자를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니스트 라푸앵트(1876–1941)가 조직한 퀘벡 지역 의원들의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푸앵트는 이후 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이자 퀘벡 지역 핵심 인물이 되었다.[31] 킹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했지만, 라푸앵트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후 20여 년간(1930년 제외) 선거에서 자유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퀘벡 지역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킹은 퀘벡에서 선거 운동을 할 때 라푸앵트를 공동 총리처럼 소개하기도 했다.[31]

자유당 당수가 된 킹은 빠르게 성장하는 프레리 지역에 주목했다. 1920년 앨버타주에서 일출을 보며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 질서"의 도래를 예감했다고 일기에 적었다.[32] 이는 당시 자유당이 온타리오와 프레리 지역 농민들을 기반으로 한 진보당 의원들의 지지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킹은 많은 진보당 의원들을 다시 자유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33]

3. 총리 재임 (1921-1948)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1921년부터 194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역임하며, 총 21년 5개월이라는 영연방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그의 집권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기, 대공황, 제2차 세계 대전 등 캐나다 현대사의 격동기와 맞물려 있으며, 이 시기 캐나다는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및 국제적 위상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집권기(1921년-1926년)에는 전후 경제 회복과 영국으로부터의 외교적 자율성 확보에 주력했다. 무역 증진을 위한 관세 인하 등 경제 회복 노력을 기울였고, 국제 사회에서 캐나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미국과 단독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대영 제국 회의에서 제국 공동 외교 정책에 반대하며 캐나다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두 번째 집권기(1926년-1930년)에는 1926년 발포 선언을 통해 캐나다를 포함한 자치령의 동등한 지위를 확인하는 등 자치권 강화 노력을 이어갔다. 1927년에는 캐나다 최초의 연방 복지 프로그램인 노인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1930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잠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세 번째 집권기(1935년-1948년)는 그의 가장 긴 재임 기간으로, 대공황 극복과 제2차 세계 대전 수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이끌었다. 미국, 영국과의 무역 협정을 통해 경제 회복을 도모하고, 캐나다 중앙은행 국유화(1938년) 등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을 결정하고 전쟁을 이끌었으나, 국내적으로는 징병제 문제를 둘러싼 영국계와 프랑스계 캐나다인 간의 갈등을 관리해야 했다. 전쟁 중 1943년에는 퀘벡에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도 했다. 전후에는 전쟁 처리와 산업 부흥을 이끌고, 국민 건강 보험과 대학교육 무상화 등 복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킹은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여, 실업 보험 도입을 추진하고(1940년 실현), 합법적인 노조 가입을 이유로 한 해고 금지(1939년), 직업 훈련 지원(1938년, 1942년), 노조 활동 보장 및 단체 교섭권 강화(1948년)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73][74][75][76]

역사가들은 킹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캐나다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뛰어난 관리 능력과 정치적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한다.[175] 그는 노동과 자본,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등 다양한 이해관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추구했고, 이를 통해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캐나다는 국제 사회에서 중견 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176][177][178] 건강 악화로 1948년 11월 15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3. 1. 제1기 집권 (1921-1926)

집권 1기 초반의 킹


1921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1921년 12월 29일 총리로 취임했다. 집권 후 킹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남겨진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그는 전시 세금 부담을 줄이고, 전쟁 중 격화되었던 민족 및 노동 갈등을 완화하고자 노력했다. 킹은 "전쟁은 끝났고, 앞으로 오랫동안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사회생활에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깊은 골을 메우는 데 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정책 면에서는 무역 증진을 위해 관세율을 낮추었다. 이는 국가정책의 높은 관세에 반대하는 진보당의 입장을 일부 반영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국내 산업 보호를 원하는 온타리오주퀘벡주 지지자들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였다.[36] 킹은 진보당을 연립 정부에 참여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의회에서 보수당의 불신임안을 막기 위해 진보당의 지지를 확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마스 크레러(Thomas Crerar)의 사임 등으로 진보당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킹은 필요에 따라 진보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정국을 운영했다.[37]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24년 정부는 1913년 이후 처음으로 예산 균형을 달성했으며, 파산 직전이었던 캐나다 내셔널 철도는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국제 관계에서는 캐나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영국이 터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1923년에는 캐나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단독으로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미국과의 태평양 넙치 어업 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같은 해 열린 대영 제국 회의에서는 제국 내 국가들의 외교 정책을 공동으로 운영하려는 영국의 시도에 성공적으로 반대하며 캐나다의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임기 말에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1925년 총선에서 아서 미언이 이끄는 보수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킹은 진보당의 지지를 받아 총리직을 유지했다. 하지만 곧 퀘벡의 보하르누아 운하 확장 사업과 관련된 부정부패 스캔들(보하르누아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정부의 입지가 흔들렸다.

결정적인 사건은 1926년 6월에 발생한 킹-빙 사건이었다. 관세청의 또 다른 부패 스캔들로 인해 하원에서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될 위기에 처하자, 킹은 총독 줄리안 빙에게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빙 총독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보수당 대표 아서 미언에게 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이는 캐나다 역사상 총독이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을 거부한 유일한 사례이다. 킹은 1926년 6월 28일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미언이 구성한 보수당 정부는 곧바로 하원에서 불신임되어 무너졌고, 결국 빙 총독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게 되었다.

3. 2. 제2기 집권 (1926-1930)

1926년 9월 25일에 다시 총리직에 오른 킹은 같은 해 열린 대영제국 회의에서 캐나다의 자치권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이 회의에서는 영국과 모든 자치령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성명이 채택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 정책으로는 1927년 캐나다 최초의 연방 복지 계획인 노인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킹은 실업 보험 도입에도 찬성했지만, 모든 주의 동의를 얻는 데는 시간이 걸려 1940년에야 실현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의 여파는 캐나다에도 미쳐 실업자가 급증했다. 킹 정부는 대공황 초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이 느리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이 위기가 경기 순환의 일시적인 현상이며 정부 개입 없이도 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판단했다.[56] 이러한 상황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보수당이 집권한 주 정부에는 실업 구제를 위해 "5센트짜리 동전 하나도 주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은 큰 정치적 실책으로 작용했다.[31] 보수당은 이 발언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킹 총리가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57]

결국 악화된 경제 상황과 실언 등이 겹치면서 1930년 총선에서 리처드 베드퍼드 베넷이 이끄는 보수당에 패배했다. 자유당은 1926년 선거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석수 확보에 실패하여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58] 킹은 8월 7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3. 3. 제3기 집권 (1935-1948)

1935년 10월 23일 세 번째로 총리직에 올랐다. 킹 정부는 고용 증진을 목표로 영국 및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추진하여 교역을 활성화했으며, 각 주의 재정 건전화를 위해 심의회를 구성했다. 1935년 집권 초기부터 미국 출신의 클라렌스 하우를 주요 각료로 임명하여 국영 기업 설립 등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다. 1938년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을 국유화하고 정부 지폐 발행을 통해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오대호 수로 개통과 트랜스캐나다 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 기반 시설 확충에도 힘썼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 내에서는 영국의 참전 여부를 두고 영국계와 프랑스계 주민 간의 의견 대립이 발생했다. 결국 캐나다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차례로 선전포고했다.

1943년 퀘벡 회담에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왼쪽), 처칠 영국 총리(오른쪽)와 함께한 킹(가운데)


전쟁 수행 과정에서 징병제 도입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킹은 국민적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징병제 시행을 오랫동안 유보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1942년 정부는 결국 징병제를 승인했고, 1944년부터 본격적인 병력 동원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퀘벡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연합국의 전쟁 전략을 논의했다.

1945년 종전 후 치러진 총선에서 자유당이 다시 승리하면서, 킹은 전쟁 처리, 산업 부흥, 군비 관리 등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전쟁 중 확보한 재정을 바탕으로 전후에는 국민 건강 보험 도입과 대학교육 무상화를 추진하는 등 복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1948년 1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11월 15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4. 은퇴와 죽음 (1948-1950)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킹은 1948년 5월 차기 선거에서 자유당 대표직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6] 1948년 8월 7일 전당대회에서 킹의 개인적인 선택이었던 루이 생 로랑이 새로운 자유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40] 세 달 후인 11월 15일, 킹은 총 21년 반 동안의 총리직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는 캐나다 역사상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이며, 총리로서 가장 많은 의회(3개의 비연속 기간에 걸쳐 6번)에서 활동한 기록이기도 하다.[6]

킹의 묘와 기념비


킹은 은퇴 후 회고록을 쓸 계획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1950년 7월 22일 폐렴으로 킹스미어(Kingsmere)에 있는 그의 시골 저택 더 팜에서 사망했다.[6] 그는 토론토 마운트 플레전트 묘지에 안장되었다.[142]

5. 유산과 평가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총리로 재임했으며, 그의 리더십과 정책은 현대 캐나다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삶과 일부 정책 결정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킹은 카리스마나 뛰어난 웅변술을 갖춘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는 라디오나 뉴스 영상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인간 관계에서는 다소 냉담하고 재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143][144] 동료들은 그의 끊임없는 정치적 책략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1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킹이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당시 캐나다가 필요로 했던 다양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145][175] 그는 공공 정책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캐나다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통찰력 있는 인물이었다.[160] 또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집단 사이에서 타협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능했으며[176], 캐나다 자유당을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킹은 1893년 대학 시절부터 1950년 사망 직전까지 방대한 양의 일기를 남겼는데, 이는 타이핑된 문서로 5만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146] 이 일기는 캐나다의 전쟁 노력 동기를 비롯한 여러 사건의 배경과 킹의 내면 생각을 상세히 담고 있어, "20세기 캐나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정치 문서"로 평가받는다.[147]

1939년, 킹과 라울 댄두랑 상원의원이 정복을 입고 있는 모습.


1938년, 킹과 그의 두 마리 개.


킹의 사후 일기가 공개되면서 그가 오컬트와 영매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148][149] 그는 유료 영매를 통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임 총리 윌프리드 로리에, 사망한 어머니와 할아버지, 심지어는 아끼던 개들의 영혼과 소통했다고 믿었다.[148] 일부 역사가는 킹이 영적인 세계에서 정치적 조언보다는 개인적인 위안을 찾으려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150], 다른 이들은 이러한 믿음이 그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다.[150] 역사가 C.P. 스테이시는 킹이 자신의 신념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분리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오컬트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고 주장했다.[151] 그러나 안톤 와그너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은 킹이 사망할 때까지 영매주의적 신념을 유지했으며, 이것이 그의 정치적 성공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152]

킹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148], 몇몇 가까운 여성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유부녀였던 조앤 패티슨과는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공식 석상에서 여주인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153][154] 일기 내용 중 일부는 그가 매춘부를 이용했거나[155], 자신이 총독으로 임명한 트위즈무어 경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졌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156]

킹 정부의 정책은 캐나다 사회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그의 전시 정책은 "흥미롭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효과적이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157], 전쟁 중과 이후에도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경제 관리 측면에서도 캐나다는 전쟁 참여국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158] 킹은 캐나다 복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으며[161], 1938년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을 국유화하고 정부 지폐 발행 권한을 확보했다.[179]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 전후에는 국민 건강 보험과 대학교육 무료화 정책 등을 추진할 수 있었다.[179] 또한 클라렌스 하우와 같은 인물을 중용하여 여러 국영 기업을 설립하고, 오대호 수로 개통과 트랜스캐나다 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 인프라 구축에도 힘썼다.[179] 이러한 노력들은 캐나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176]

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그가 결정을 회피하고 우유부단했으며 창조적인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그가 통치하기 어려운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의 통합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한다.[23] 그의 신중함과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 스타일은 때로 '의회가 결정할 것'이라는 말로 대표되기도 했다.[159]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역사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킹은 종종 가장 위대한 캐나다 총리 중 한 명으로 선정된다. 그는 1968년 국가 역사적 의의 인물로 지정되었으며[162], 현재 50캐나다 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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